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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퍼즐조각/정치 이야기

[정치 이야기] 우리나라 정당의 기원과 계보, 변천사 정리

by 이야기퍼즐조각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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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이야기퍼즐조각 - 정당계보이야기(1)

 

안녕하세요. 이야기퍼즐조각입니다.

각각의 모든 이야기퍼즐조각은 하나의 역사로 완성됩니다.

 

식민사관에서 우리나라는 붕당정치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조선 후기 정권을 장악한 노론 세력을 견제할 다른 세력이 없었기에 노론이 썩으면서 조선이 패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노론의 마지막 당수가 매국노 중의 매국노 이완용입니다.

 

일제 식민지가 되면서 노론은 사라졌습니다. 나라가 없어졌으니까요. 하지만 노론의 명맥은 일제 치하 친일파로 이어졌고, 해방 후에는 친미파와 이승만 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다시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 세력은 군부정권, 특히 박정희와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보수정당으로서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해방이후부터 신군부 쿠데타 이전의 정당 계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한국민주당

1945년 꿈에 그리던 해방 직후 우리나라 정국은 전국시대와도 같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너무도 많은 단체와 정당들이 있었습니다. 전국시대를 제패한 것은 이승만이었습니다. 

 

이승만이 총재였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연합체에 가까워 정식정당이라고 보기 어려웠지만 1대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합니다. 

 

반공성향의 우익정당 한국민주당은 의석수는 적지만 영향력이 강한 의원이 많아 원내 최대 세력이 되었습니다. 한국민주당을 민주정당의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한국민주당은 원래 보수정당의 성격이 더 강하였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모태라고 주장하는 민주당과 계보가 완벽히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대통령중심제 도입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한국민주당이 실권 장악을 기대하였지만 각료 임명에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이에 이승만과 갈라서 야당성향으로 변신하여 대한국민당의 신익희, 대동청년당의 지청천 세력과 결합하여 1949년 민주국민당으로 새출발하게 됩니다.

 

한편 김구의 한국독립당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반대하여 불참하였으며, 국민회와 대한국민당, 대한청년당 등의 친이승만 성향의 우익 정당들이 훗날 자유당의 모태가 됩니다.

 

 

# 대한민국 최초의 여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태동

이승만 정권이 재집권을 위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추진하며 권력재창출을 위해 자유당을 창당합니다. 자유당은 발췌 개헌(직선제), 사사오입 개헌(중임 제한 철폐) 등을 주도하며 대한민국 최초 ‘여당’으로서 자리매김합니다.

 

 

 

 

 

한편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승만의 종신집권 음모가 현실화되자 반대세력들이 결집하여 1955년 민주당을 창당합니다. 민주당에 발전적 해체를 선언한 민주국민당 세력과 장면, 정일현과 자유당 탈당 인사와 무소속 등이 참여하면서 통합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리하여 의석 수가 크게 늘어 양당제의 토대가 구축됩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자신들의 모태로 삼고 있는 당이 바로 이 민주당입니다.

 

 

# 4.19혁명과 5.16 쿠데타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내각책임제가 됩니다. 그리하여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가 속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사회대중당 등의 혁신(진보) 세력들이 4.19 혁명을 민주혁명으로 끌어올리자며 혁신정당을 창당하였지만 소수 의석을 얻는 것에 그쳤습니다.

 

민주당의 집권은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다음 해 5.16 쿠데타로 박정희 세력이 정권을 빼앗아갔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민정이양 뒤에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공화당을 만들었습니다. 

 

한편 야당 진영은 단일정파를 추진하였지만 대통령 후보 지명 등에서 의견차를 보이면서 구파 중심의 민정당과 신파 중심의 민주당 등으로 분열합니다. 

 

 

# 신민당의 성장과 유신체제

1967년 7대총선에서 패배한 야권이 통합을 추진합니다. 민정당과 민주당이 민중당으로 결합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표 최고선거에서 패배한 윤보선이 민중당에서 탈당하여 신한당을 창당합니다. 하지만 결국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라는 여론에 밀려 합당을 선언, 신민당을 출범시킵니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여전히 제1당을 유지하였지만 신민당의 세력은 무섭게 성장하였습니다. 앞서 1971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와 겨루어 94만여 표의 근소한 차이로 겨우 승리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위해 1972년 유신체제를 출범시킵니다. 이 때문에 국회와 정당의 활동이 대폭 위축되었습니다. 유신체제 하에서 대통령은 전체 국회의원의 1/3을 추천하였는데 이들 임명제 의원은 유신정우회라는 별도의 교섭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습니다. 그나마 중선거구제가 도입되어 동반당선이 가능하였던 덕분에 신민당은 52석이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74년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김영삼이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유신체제를 철폐시키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유신 반대를 외치는 시민사회단체와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힘을 합쳐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1978년 10대 총선 결과 공화당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기는 하였지만 득표율은 신민당이 더 높았습니다.

 


 

 

위는 이제껏 다루었던 이야기를 정리한 표입니다. 우리나라 정당사는 몹시 복잡합니다. 정당사는 현대에 이를수록 더욱 복잡해 집니다. 하지만 한 번 계보를 정리해 두신다면 정치와 현대사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다음은 12.12사태 이후의 정당 계보와 정당 변천사 이야기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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